>> about

 

 
1993년 이래 만들어온 예슬미아 가족 신문의 역사를 보실 수 있습니다.

    History of Yeseulmia's News
     
     
    현재~

  • 제 50호, 2002년 10월 15일 국민일보 생활면에 우리 집 신문이 소개 됨
    <우리집 신문은 '고국의 글' 지킴이> 라는 제목으로 실림.
    인터넷 신문보기,  종이신문보기

    2001,11월; 캐나다 3주년 기념 인터넷에 홈마련
  • 역사적인 홈페이지에 <예슬미아홈>올리기. 2001년 11월.  
    캐나다 땅을 밟은 3주년을 기념하며 인터넷에 올림.   
    예슬미아 가족이 나날이 살아가는 역사에 더욱 큰 의미를 부여하며....
     

    1998년~ , 캐나다 위니펙

  • 제 45호 2001년 들어 신문 발행이 횟수가 다소 줄어들어 아쉬워 하며
    Banff 여행신문을 A4용지 24면에 걸쳐 만들며 아쉬움을 달램.
  • 제 42호 2000년 12월 31.  2000년을 마감하는 신문을 발행.
  • 제 38호 '99년 N.I.E 대축제 가족신문 부문(중앙일보)', 특별상
    -안예슬 가족.  <예슬미아 신문 36호>
  • 제 37호 99. 12. 25. 1년에 8회를 발간한 가장 활발한 신문 발행이 있었던 해.
  • 제 29호 98. 12. 29.  캐나다 위니펙 땅에서 발행한 첫 예슬미아신문.
    예슬미아 신문의 새로운 삶을 가족신문에 옮겨 놓고 있음. A4 용지14면으로 발전.

    1996~ , 서울 성산동 

1994년~, 광주.

  • 제 4호:1995. 6. 23   예슬(8년 2개월) 슬미(5년 2개월) 미아(22개월)
    광주에서의 생활을 소개...
  • 제 3호: 1995년 4월 23. 10만원짜리 중고 컴 하나 장만 엄마의 타이핑 연습과 가족신문을 만들어 도트 프린트로 인쇄-오리고 붙여서-아이들이 손수 그림 그려서
    축소 복사등을 해서 집어 넣고 복사해서 만들다. A4용지 12면(때론 14면)으로 발전.
  • 제 2호: 1994. 11.20 <예슬미아 신문>으로 신문 이름이 바뀌고 A3용지 8면.  
    우리 예슬양의 노고가 끔찍했음.  표지부터 그리고 글씨 쓰고 색칠하고...
    갑자기 광주로 이사를 하게 되어 친구들에게 이사 기념 선물로 신문을 주었음.  
    17층에 살던 연주민주네 가족이 이 신문을 보고 Good idea라고 하면서 곧 <무지개신문>을 발간 매달 광주로 보내게 되어 <예슬미아 신문>도 좀 더 자주 만들게 됨.

    1993년 인천 부평, 창간호
  • 창간호: 1993  5. 10- 신문 이름은 <예슬미네 소식> 왜? 미아가 태어나기 전이니까. A3 용지 2면.

 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
The Lord will watch over your coming and going both now and forevermore.(Psalms 121:8)